195 익숙함이 주는 위험
2020.09.27 22:36
권은수
선입관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가지고 고정된 생각이나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우리 생활을 방식이나 언어습관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선입관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는 선입관은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게 하며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람이 내가 원하는 익숙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가족관계에서 많은 실망이나 갈등이 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선입관 때문입니다. 내가 잘 해준다고 하는 것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부담이나 강요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해져서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함으로 인해 오는 서운함은 대부분 내 마음을 알고 반응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깨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면 익숙해져서 눈을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며 감사함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에 눈에 염증이 생겨서 몇 주 동안 항생제가 들어 있는 안약을 처방을 받았습니다. 눈이 아픈 동안은 허리를 숙여 물건을 집으려고 하거나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안압이 느껴지며 통증이 왔었습니다. 눈이 아파서 불편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마음대로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돌리며 누리는 자유가 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는 귀중함이나 감사함을 고백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깨닫지 못하면 내 안에 이미 형성된 선입관을 깨는 것들에 대해 실망과 불평을 넘어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 말씀이 깨닫아 지는 기쁨과 감격이 어느새 성경을 읽는다는 것과 그 말씀을 알고 있다는 만족함으로 굳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이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행위의 익숙함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깊은 만남보다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지속되면 말씀, 기도, 예배, 섬김 등은 자신이 이미 설정해 놓은 기대치를 만족하게 하는 반복적인 행위가 될 뿐입니다. 그 속에서 당연하게 경험하며 누리고 나누어야 할 예수님의 풍성한 생명과 넘치는 은혜가 있을 곳을 잃게 됩니다.
익숙함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기대치를 설정하게 만들고 그 안에 갇히게 하는 위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은 곧 신앙생활의 겉모습만 갖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하며 누리고 나누는 사랑과 은혜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막을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 또한 막아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를 돌아보며 잘못된 익숙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축복이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워지며 그 사랑과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통로가 되는 BTIC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