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절제보다는 헌신된 생활을
2018.03.25 22:15
권은수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 사역의 마지막이자 절정인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때부터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신 날을 깊이 묵상하며 부활절 전 한 주간을 고난 주간(Passion Week)으로 지킵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경건한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절제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도 다니엘 금식에 대해 소개 하며 형편에 따라 동참하기를 권면했습니다.
해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이하며 무엇을 하지 않는 ‘절제된 생활’도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고 그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드리는 ‘헌신된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절제된 생활은 ‘내가 이렇게 했다’ 또는 ‘내가 이 만큼 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지만, 헌신된 생활은 하나님이 깨닫도록 인도하시고 그렇게 살도록 이끌어 주신다는 은혜에 대한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랫 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삶이 잘 변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관점에 대한 차이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하며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나에게 의미를 주어 헌신된 성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은혜를 깨닫는 것도 필요하지만, 깨달은 은혜가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의지적인 결단과 노력을 통해 은혜가 내 삶에 열매 맺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은혜에 반응하여 결단하고 노력하는 것을 결심하고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그것을 표현하여 실천하는데 도움을 드리는 것이 ‘헌신 시간 ’입니다. 공개적으로 표현할 때 실천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헌신 시간에 중요하거나 급한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주 동안 ‘이렇게 살아보겠습니다’라고 결정한 자신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며 도우심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예배를 드리며 마음에 감동이 되거나 깨닫게 되어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것이면 괜찮습니다.
‘헌신하고 나서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결단하고 도우심을 구할 때 하나님은 도와 주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지키지 못하였더라도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이끄시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잘 하고 있다.’라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하면 되는데 꼭 앞에 나가서 헌신 카드를 작성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헌신카드에 적어봄으로 한 주간 헌신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고, 자신이 내린 마음의 결단을 행동으로 고백할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롬10:10). 예수님도 때로는 제자들을 공개적으로 부르셔서 세우셨고, 예수님을 시인하라고 하셨습니다(눅 12:8). 헌신은 예수님이 내 삶을 다스리고 계심에 대한 공개적 시인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쑥스럽고 어색할 수 있지만 받은 은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하나님께 헌신을 하는 성도의 삶이 되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주는 의미가 생활 가운데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