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이해하는 만큼 보입니다
2024.11.10 18:08
권은수
직장에서 함께 일할 팀원들을 뽑을 때면 지원자들 중에 어떤 분들을 인터뷰 대상자들로 선정할지 고민합니다. 서로 귀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일지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정된 인터뷰를 하며 나는 대화나 질문과 대답을 들으며 어떤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 될지 고민을 합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싶어하는지, 언제까지 계속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따라 그 이해의 깊이는 지속적으로 넓어질 수 도 있고, 어느 시점에 정체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멈춰지면 인간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 선을 지키는 정도에 머무는 형식적인 모습으로 서서히 경직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는 시행착오가 있는데, 우리 삶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더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있지 않을까요? 사람 관계에서 겪는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상처로 남아 관계가 경직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과 관계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보다 상대방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픔이 더 큽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잘 모를까?‘하는 고민보다 ‘주님, 왜 그러세요?’라는 씨름을 더 많이 하고 있다면, 여전히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들입니다.
이해를 받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늘 그런 태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대하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것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때, 비로서 ‘아~ 이렇게 하기 원하시는구나‘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잘 깨닫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고, 기뻐하고, 완전하신 뜻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이루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애쓰며, 예수님을 알아가는 깊이가 더해지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