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해석하기 나름
2024.10.27 18:06
권은수
컵에 물이 반쯤 들어있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 컵 밖에 없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반 컵이나 있다고 합니다. 어떤 표현을 쓰는지에 따라 긍적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컵의 물을 마셔야 하는 사람이라면, 전자는 이제 반 컵만 먹으면 된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후자는 아직도 반컵이나 남았다고 투덜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이해되는 것들이 상황을 주의하여 깊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시각에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상황을 해석하여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반응하려고 합니다. 해석을 한다는 것은 기준을 가지고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기준이 바뀌면 해석하여 도출하는 결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의 의미는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각 즉,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논리적인 철학이나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넘쳐나는 다양한 기준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살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기준을 거부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전후 시대적 모습을 보면, 예수님을 믿어도 논리적인 철학이나 시대적 유행을 여전히 기준으로 붙잡고 살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위협에 노출될 수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골 2:10). 논리적인 철학이나 유행, 시대적 공감이나 사조등 우리를 굴복시켜 그 아래 두려고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 삶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성도들의 삶을 말씀으로 조명하여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일어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지경에 예수님의 다스리심이 일어나는 것을 “예수님이 나를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그 분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기를 갈망하도록 “하나님 고픔“을 주신 것을 기뻐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삶인지 알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