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컬럼

367 설익어 떫은 감

2024.01.21 19:03

권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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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살았던 할아버지 댁에는 큰 감나무가 세 그루 있었습니다. 봄에 감 꽃이 지고 나면 곧 작고 푸른 감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주먹만한 감이 노랗게 나무에 달려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을이 조금 더 깊어지면 노란 감은 빨간 홍시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감보다 일찍 익어 홍시가 된 열매가 가을 이슬을 머금고 바닥에 떨어질 때를 기다리며 시원하고 달콤한 홍시를 먹는 기쁨을 머리속에 그리며 즐거워하곤 했습니다. 감은 지금도 제가 좋아 하는 과일들 중에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올 초에 어떤 분을 통해 홍시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캐나다에 살며 단감을 가끔 사 먹었어도 홍시를 만들어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감이 빨리 익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색깔도 바뀌고 감도 상당히 물러 보이는 것 같아서 한 개를 먹었습니다. 겉은 익었지만 속이 다 익지 않아 떫은 맛이 났습니다.

떫은 감을 먹으면서 어린시절 조부모님께 받았던 깊은 사랑을 추억과 함께 꺼내서 생각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감나무 밑에 떨어진 시원한 홍시를 빨갛게 물든 감 잎에 올려서 가져다 주신 일. 인절미와 같이 먹으면 맛이 있다고 홍시와 인절미를 같이 준비해주신 일. 오랜 시간 가슴속에 묻혀 있던 추억을 꺼내며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고, 그런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꺼내서 생각해보면 마음이 푸근해질 뿐 아니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소중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신 좋은 일들이 시간이 지나며 기억의 창고속에서 먼지가 덮인 채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는 하나님께서 지난 날들에 베풀어주신 좋은 추억들이 가장 필요할 때 떠올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을 푸근하고 기쁨 가득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삶에 그런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런 좋은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분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멋진 삶을 살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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