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컬럼

286 어디에 관심이 있을까요?

2022.06.26 21:49

권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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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큰 아들을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돈밸리 길을 따라 운전을 했습니다. 저녁시간이었지만 차량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굽어지는 곳이 많고, 차들이 빨리 달려 신경이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베이뷰 길 나가는 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 아들이 옆에 아주 오래된 차 두 대가 지나간다고 했습니다. 곁눈질로 보니 조금 오래된 차 두 대가 같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자신이 관심이 가지고 있는 차들이 지나가면 차종과 연식, 차량 가격등을 저에게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옆에 지나가는 차는 1969년도에 만들어진 무슨 차량이고, 두 대는 같은 시리즈인데 모델이 다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차를 늘 타고 다니지만, 아들처럼 차에 대한 관심이 있지는 않습니다. 두 대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친구 사이일 것 같고, 운전자와 동승하는 사람은 젊어 보이는데 아들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오래된 차를 운전하며 아주 즐거울 것 같다고 하며 부러워 했습니다. 하루의 피곤이 싹 풀리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고 하는 아들을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었습니다.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오면서 기억에 나는 것은 차를 보며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과 1969년도 식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차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운전하는데 집중해서 제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영어로 설명을 해서 그런 것일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을 준비하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지는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의 놀라운 고백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기까지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고백과 거리가 있는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승의 고난과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 함께 걸어간다고 보기 어려운 행동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태도와 행동에 예수님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몇 마디 입술의 고백이나 잠시 뜨거워지는 열정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며 사는 삶의 모습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을 연습하고 점검하는 것이 신앙 공동체를 통해 누리는 유익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성숙한 성도로 함께 세워져 가는 BTIC 가족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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